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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방통신위 이대로 좋은가
출처 매일경제 발행일 2008.08.01 조회 1402
방통신위 이대로 좋은가

방통위는 IT통신산업 구경꾼

의결 안건 64%가 방송사 허가ㆍ내부 업무…후방 산업 붕괴 조짐
인터넷전화 정책 표류로 관련산업 중국産이 잠식


◆ 방송통신위 이대로 좋은가 (1) ◆

"사장들끼리 얘기해보면 지고 있는 빚이라도 털고 빠져나갈까 고민합니다.
더 이상 돈 버는 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 지난달까지 인터넷전화 단말기를 생산하던 P사 정모 사장(54)은 최근 연구개발팀을 해체했다.
인터넷전화기와 소프트웨어를 일괄 생산했지만 지금은 중국산 단말기를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방식으로 가져와서 판매만 하기 때문에 더 이상 연구개발 인력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체 직원도 3년 전에는 100명이 넘었으나 이제는 30명뿐이다.

정 사장은 "정부가 곧 인터넷전화 시대가 열리고 IT839 정책 중 하나라며 투자를 유도해놓고 3년째 서비스가 제대로 안 되고 있다"며 "소신 없는 방통위 때문에 이름만 유지한 채 오늘 내일 하고 있는 중소기업이 많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세계 최강국임을 자랑하던 한국 정보기술(IT)산업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인터넷전화, 인터넷TV(IPTV) 등 방송통신 서비스가 지연되고 지상파DMB, 와이브로 서비스 활성화가 더디게 진행되면서 IT산업을 후방에서 받치고 있던 제조업과 연구개발(R&D) 분야까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서비스 경쟁을 유도하고 규제를 담당하는 방송통신위원회가 명확한 방침을 세우지 못한 채 '촛불시위' '아고라 사태' 등 정치논리에 발목이 잡혀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매일경제가 지난달 31일 방송통신위원회 출범 이후 지난 4월 28일 개최한 5차 회의(1~4차는 위원회 설립 및 위원 선임 관련 안건)부터 7월 25일 열린 22차 회의까지 4개월간 전체 의결 사항을 분석한 결과, 99건의 의결사항 중 가장 많은 24%(24건)가 방송사업자(지상파, SO, PP, 지상파DMB 등)의 허가(재허가, 등록, 등록취소) 관련 안건이었다.

방송요금 승인, 방송발전기금운용계획 등 단순 방송 정책 업무와 KBS 이사 추천 안건, 방송통신위원회 조직 구성 등 조직 내부 안건까지 포함하면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안건은 전체 중 64%(63건)를 차지한다.

반면 방송통신 규제 업무 및 신규 IT 정책 도입과 관련된 안건은 36%(37건)에 불과했다.
방통위 출범 이후 4개월간 의결 사항은 'IPTV 시행령 의결' '하나로텔레콤 제재' 외에는 거의 없었다.
신속한 결정이 생명인 IT산업에 위원회 조직이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애초 우려는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사업자 간 이익이 대립하고 있는 안건과 정치적 논란이 될 수 있는 안건은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모습을 자주 보이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방통위가 정치논리에 빠져 있는 사이 국내 IT산업 생태계는 붕괴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인 것이 한때 'IT839 정책'의 핵심 서비스 중 하나로 부각됐던 인터넷전화와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사업이다.
정부가 밝힌 로드맵대로라면 이미 지난 6월 시행해야 했던 인터넷전화 번호이동성 제도가 지연돼 업체들은 위기를 호소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IT기업연합회(KOIBA) 조사 결과 국내 솔루션 장비 및 단말기 업체 중 약 70%가 업종을 변경했거나 도산한 것으로 파악된다.
반면 그 자리를 미국 업체 시스코 외에 아이페보, 벨킨 등 대만 업체들이 국내 인터넷전화 솔루션 및 단말기 시장을 잠식할 정도로 IT 생태계 붕괴는 심각하다.

지상파DMB 사업도 마찬가지다.

옛 방송위원회에서 추진하던 해외 진출은 방통위로 통합된 이후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으며, 국내 DMB 사업도 뚜렷한 수익원을 찾지 못해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방통위가 구체적인 성장동력을 제시할 수는 없지만 방송통신 분야에서 신사업이 나올 수 있는 토대는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지금은 IPTV 외에는 방송통신 융합산업이 보이지 않는 것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옛 정보통신부 업무를 나눴던 지식경제부, 문화체육관광부, 행정안전부와의 IT산업 육성 조율도 여전히 문제로 지적된다.
실제로 방통위는 IPTV 산업 육성, 정보통신진흥기금 사용 문제 등에서 지식경제부와 마찰을 빚고 있으며 문화체육관광부와는 디지털콘텐츠 산업 육성, 글로벌 미디어 사업 추진에서 부딪치고 있다.

게다가 행정안전부와도 인터넷 정보보호 및 보안 관련 산업 업무 조율로 힘들어하는 모습이다.
이 때문에 청와대 내 'IT산업 수석' 신설을 통한 컨트롤타워가 필요한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방통위의 벤치마킹 모델이던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규제 정책의 최우선은 공정 경쟁 유도를 통한 기술 혁신'이라는 명확한 철학을 갖고 규제를 하면서도 사업자 간 공정 경쟁을 통해 미국 IT산업 육성을 유도하고 있다.

반면 방통위는 이질적 규제 철학을 가진 '방송과 통신', '공공론과 산업론' 사이에서 명확한 방침을 내놓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고 있는 모습이다.

방송통신 분야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방통위가 정책의 순도를 높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급변하는 방송통신 융합산업에 맞는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라며 "방송통신 규제와 IT산업 육성을 조율하는 컨트롤타워가 절실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진평 기자 / 손재권 기자 / 이승훈 기자 / 최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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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통신위 이대로 좋은가 ② ◆

IT정책 컨트롤타워가 없다



지난 7월 10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 호텔. 지식경제부 주관으로 이명박 정부의 첫 정보기술(IT) 종합 정책인 '뉴 IT전략'을 발표하는 행사가 열렸다.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과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 이현순 현대ㆍ기아차 사장, 서승모 IT기업연합회장, 백종진 벤처협회장 등 IT업계 사람들이 대거 참석했지만 그 어디에서도 방송통신위원회 인사들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뉴 IT전략의 내용도 IT를 활용한 산업 육성책에 국한됐다.
IT정책이 국민들에게 피부로 느껴지게 하기 위해서는 유ㆍ무선 네트워크를 이용한 통신서비스와 결합할 때에야 가능하다. 통신서비스를 관장하는 방통위가 정책 입안에서 '왕따'를 당하면서 정책도 반쪽짜리에 그쳤다.
옛 정통부가 내놓은 IT 종합 육성대책인 'IT 839' 정책이 잘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와이브로나 DMB 등 새로운 'IT서비스' 육성은 앞으로 찾아보기 어렵게 될 전망이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옛 정통부가 해체됐다. 정통부 업무는 방통위와 지경부, 문화체육관광부, 행정안전부 등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방송ㆍ통신 융합 정책과 통신서비스 등을 방통위가 맡고 지경부는 IT관련 산업 육성정책을 담당하게 됐다. 문화부는 콘텐츠 업무, 행안부는 개인정보 보호와 관련된 업무를 각각 맡았다.
정통부 업무가 4개 부처로 나뉘면서 IT정책을 종합적으로 관할하는 컨트롤타워가 실종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처별로 돈(?) 되는 사업에는 저마다 달려들지만 이를 조정해주는 기능이 사라진 것이다.
옛 정통부를 계승한 방통위가 이러한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뒷짐만 지고 있다. 방송 관련 정책은 긴급 안건으로 올려 신속히 처리하면서 통신 관련 안건의 처리는 속도가 더디다. 부처 간의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매번 뒷북이다.
방통위의 컨트롤타워 기능 실종은 의사결정 구조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방통위는 5명의 위원이 합의제로 정책을 결정하는 위원회 방식이다. 과거 정통부 시절에는 장관 혼자서 의사결정을 하는 독임제 방식이다. 이는 정책 결정 뒤에 다소의 부작용은 있을 수 있지만 의사결정이 빠른 것이 장점이다. 장관 간의 협조를 통해 업무 조율도 쉽다.
반면 위원회 구조의 방통위는 의사 결정이 느리다. 방통위 공무원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5명의 위원에게 일일이 보고하고 위원회 회의가 열려 의사결정이 나기를 기다리는 사이 이미 다른 부처는 실행 단계에 있다.
정보통신 정책 기능이 분할됨에 따라 '정부 창구'가 복잡해져 기업의 불편이 가중될 수 있다는 염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최근 IPTV(인터넷방송) 관련 업체들로 구성된 IPTV산업협회가 지난달 지경부에 등록을 하자 방통위가 반발하고 나선 것이 대표적인 예다. 업체들은 '산업 진흥은 결국 지경부가 하는 것 아니냐'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방통위는 '방송은 방통위 소관으로 이와 관련된 이익단체 설립 허가는 방통위가 해야 할 영역이다'고 반발했다.
결국 방통위는 서비스 업체, 장비ㆍ솔루션 업체 200여 개를 아우르는 별도의 협회를 만들기로 했다.
IT정책의 컨트롤타워 기능이 실종되면서 정책을 놓고 부처별로 떠넘기기도 한창이다.
대표적인 게 위피(휴대폰에 의무 장착하는 무선인터넷 플랫폼) 존폐 여부를 놓고 벌인 지경부와 방통위의 공방이다. 방통위는 위피 업무는 산업 진흥 업무를 담당하는 지경부가 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지경부는 위피 규제를 담당하는 방통위가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팽팽하게 맞섰다. 서로 부담스러운 업무는 처리하고 싶지 않다는 얘기다. 결국 방통위에서 위피 문제를 맡기로 했지만 해당 부서는 떨떠름하다는 반응이다.
IT정책 컨트롤타워 실종에 대해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방통위는 타 부처와 경쟁적 보완관계"라고 말했다.
타 부처가 업무를 할 수 있고 우리가 할 수도 있는데 굳이 컨트롤타워까지 거론할 필요가 있느냐는 얘기다.

◆ "비전이 안보여 떠납니다"

= "저는 이 조직에서 꿈과 희망, 미래를 찾을 수 없어서 떠납니다." 최근 방송통신위원회를 떠난 옛 방송위원회 출신 직원의 얘기다. 당장 옮길 직장을 찾지도 못했지만 미래가 없는 방통위에서는 더 이상 일하고 싶지 않다고 분노를 토했다.
방통위는 정부 부처인 정보통신부와 민간기구인 방송위원회가 합쳐진 조직이다. 두 조직이 하나의 정부 부처로 새롭게 탄생한 것은 공공조직과 민간조직을 합치는 일종의 실험이었다. 이러한 실험이 조직원들의 잇단 이탈로 실패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2월 29일 방통위 출범 이후 현재까지 방통위를 등진 사람은 37명이다. 18명이 퇴직했고 19명이 다른 부처로 옮겼다. 퇴직자는 방송위 출신이 13명으로 더 많다.
대부분 방통위로 옮기면서 6급 이하 직급으로 들어간 젊은 직원들이다.
한 방송위 출신 퇴직자는 "방송위에 있을 때는 내 책임하에 업무를 할 수 있었는데 6급 방통위 직원이 되니 4~5급 뒤치다꺼리나 하는 게 내 일이 되어버렸다"며 "일의 보람과 승진 기회 등 꿈이 없는 직장이라 퇴직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전출자다. 정통부 출신 직원들 가운데 19명이 방통위를 떠나 지식경제부와 방위사업청 등 다른 부처로 옮긴 것이다. 요즘 공무원 사회에서는 타 부처에서 결원이 생기면 제일 먼저 지원을 신청하는 것이 방통위 직원이라는 얘기가 돌 정도다.
방통위는 우정사업본부를 지경부로 넘기고 위원회 조직으로 바뀌면서 승진 기회가 줄어들었다. 업무도 위원회의 합의 방식으로 진행되면서 공무원이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사라졌다.

[유진평 기자 / 이승훈 기자 / 손재권 기자 / 최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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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융합산업 비전 포기했나?

위원회조직 장점 못살려 업계 우왕좌왕
성장동력사업 지지부진…중소벤처 위기
◆ 방송통신위 이대로 좋은가 (3)◆



"우리는 이제 정보통신부가 아닙니다. 왜 우리에게 문의하십니까? 지식경제부나 다른 부처에 문의해 보세요."

'차세대 네트워크 PC' 업체를 운영하는 벤처업체 사장 박 모씨(48)는 최근 사업과 관련해 방송통신위원회에 문의하러 갔다가 황당한 일을 겪어야 했다. 네트워크 PC를 이용해 에너지 소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친환경 IT기술'이 IT산업의 화두가 될 것이라고 판단해 방통위 담당자에게 정부의 정책 방향과 향후 서비스 계획을 문의하려 했으나 담당 공무원에게 들은 대답은 "지경부에나 가라"는 말이었다.

박 사장은 "요즘 방통위 모습을 보면 방통융합 산업은 IPTV밖에 없어 보인다"며 "친환경 IT산업이나 네트워크 컴퓨팅 등 미래 IT서비스 산업도 방통위의 업무일 텐데 너무 무관심한 것 아니냐"고 하소연했다.

과거 정보통신부는 'IT839(8대 신규 서비스와 3대 인프라스트럭처, 9대 신성장동력)' 전략을 금과옥조처럼 내세웠다. 하지만 시장전망을 부풀리고 지나치게 세부적인 항목까지 선별해 산업의 자율적인 융합을 막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위원회 조직으로 출범한 방통위는 품목별 성장동력 육성 방안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융합 서비스 도입 계획 및 규제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즉 방통위는 '서비스 정책(표준, 허가시기)' 도입을 통해 기업이 스스로 성장동력을 찾는 환경을 조성해야 하지만 독임제 부처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사실상 '융합산업 비전 제시' 기능을 포기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방송통신위가 지난달 2일 향후 로드맵이라며 출범 이후 처음 제시한 '하반기 중점 추진과제'에는 △인터넷TV 활성화 △방송콘텐츠 활성화 △디지털방송 전환 △주파수자원 활용방안 등 6가지가 제시됐다. 그러나 주파수 재분배 일정 등을 제외하면 구체적인 로드맵이나 추진 과제 등이 밝혀진 것은 거의 없다. 그나마 7월 말까지 결성하기로 발표했던 '디지털방송 활성화 추진위원회'는 8월이 시작됐지만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방통위 홈페이지(kcc.go.kr)의 정책홍보란에는 핵심사업과 추진과제 등이 '준비 중'으로만 나와 방통위 정책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중소ㆍ벤처기업들을 막막하게 하고 있다.

방통위가 '비전'을 세우지 못해 국가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방통위의 비전 부재 원인을 '철학이 없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방통위는 출범 당시 위원회의 합리성과 독임제의 추진력을 이어받겠다고 했으나 결과는 위원회의 무책임성과 독임제의 칸막이식 사고만 남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정동훈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는 "방통위 위원 구성이 정치적인 상황 속에서 만들어져 정치상황을 따라가다 보니 방통위의 독자적인 철학과 원칙이 없다"면서 "정책의 일관성은 물론 공정성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방통위가 KBS, MBC, SBS 등 지상파 방송사나 대형 포털, 기존 통신사업자 등 기존 산업 권력에는 상대적으로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방통위가 중요한 정책결정을 하는데 알게 모르게 이들 업체의 입김이 작용하다 보니 제대로 된 정책을 수립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과거 정보통신부를 해체하고 방송위원회를 합병한 이명박 정부의 구체적인 'IT 정책과 비전'은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 아니냐는 회의론마저 나오고 있다.

[손재권 기자 / 최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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